실존적 공허와 불안의 미학 - 『말테의 수기』와 도시 속 고독의 심리학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그려낸 시대를 초월한 사랑 이야기}
19세기 말~20세기 초 콜롬비아 카리브해 연안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콜레라가 창궐하던 시대의 사회상과 사랑의 의미를 함께 탐구합니다. 마르케스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사랑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소설 제목의 '콜레라'는 단순한 질병이 아닌 사랑의 열병을 의미합니다. 마르케스는 사랑의 증상과 콜레라의 증상이 유사함을 강조하며, 사랑이 가진 고통과 열정의 양면성을 탐구합니다. 플로렌티노가 겪는 상사병은 마치 콜레라와 같은 증상을 보이는데, 이는 사랑이 가진 파괴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속성을 상징합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페르미나 다사의 관계는 그들이 각각 17세와 13세였을 때 시작됩니다. 플로렌티노는 전보 심부름을 하러 페르미나의 집에 들렀다가 책을 읽는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를 듣고 한 순간에 사랑에 빠집니다.
이후 매일 아침 7시면 페르미나가 늘 지나다니는 공원의 아몬드 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녀를 기다립니다. 청춘의 순수한 설렘이 이 장면에서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처음에 페르미나는 그의 편지에 응답하지 않았고, 그는 상사병에 걸려 몸져눕기까지 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비밀 연애를 시작하며 사랑의 언약을 주고받습니다.
페르미나의 아버지 로렌조 다사가 개입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위기를 맞습니다. 로렌조는 플로렌티노와의 만남을 반대하고, 딸을 다른 도시로 데려갑니다.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두 사람은 전신을 통해 소통했지만, 페르미나는 점차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고 결국 약혼을 파기합니다.
성숙해지자 눈 깜짝할 사이에 플로렌티노 아리사를 버렸고, 그로 인해 즉시 쓰라린 연민을 느껴야 했지만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페르미나는 우르비노 박사와 결혼하여 상류층의 삶을 살아갑니다. 반면 플로렌티노는 622명의 여성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오직 페르미나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그는 그녀를 위한 인생을 설계하며 오직 다시 만날 날만을 기다립니다.
51년 9개월 4일 후, 우르비노 박사의 사망으로 플로렌티노는 다시 페르미나 앞에 나타나 고백합니다.
반세기가 넘게 이런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소. 나는 영원히 당신에게 충실할 것이며 당신은 영원한 나의 사랑
처음에는 분노했던 페르미나도 그의 편지를 읽으며 점차 진심을 깨닫게 됩니다.
두 사람은 크루즈 여행을 떠나며 노년의 사랑을 시작합니다. 페르미나의 딸은 이를 비난하지만, 페르미나는 당당하게 말합니다.
일 세기 전에는 우리가 너무 젊다는 이유로 그 불쌍한 남자와 날 괴롭히더니 이제는 너무 늙었다는 이유로 그러는군.
두 사람은 노란 깃발을 내건 배를 타고 강 위를 항해하며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항해하겠다고 말합니다.
마르케스는 이 소설을 통해 "사랑은 늙지 않는다"는 보편적 진리를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노년의 사랑이 젊은 시절의 사랑 못지않게, 혹은 그보다 더 깊고 의미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허연 시인의 말처럼 "나이 들어 하는 사랑은 자꾸만 천한 일이 되고..."라는 구절은, 사랑의 진정성과 상처, 그리움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3년을 그리워하며 완성된 집념의 사랑 이야기. 그것이 바로 『콜레라 시대의 사랑』입니다.
이 작품은 "사랑이란 그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은총의 상태처럼 그 자체가 시작이자 끝"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씁쓸한 아몬드 향내는 언제나 그에게 짝사랑의 운명을 떠오르게 했다...”(『콜레라 시대의 사랑』, 민음사, 2004)
댓글
댓글 쓰기